전체 글 (3) 썸네일형 리스트형 「손 끝에 보이는 죽음」 에피소드 1-2: 침묵 속의 2년 지하철을 타고 언덕배기를 한참 걸어 올라온 원룸은 여전히 춥고 좁았다. 베리타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모르는 사람의 사연을 듣는 것은 감정 소비가 컸다.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의심, 누군가의 상처—그것들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일은 자신을 비우는 일이었다.그런데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내려면 일이 필요했다.침대 옆 책상에 앉았다. 휴대폰으로 계산을 했다. 월세 45만 원. 관리비 5만 원. 이미 밀린 월세가 2개월. 손가락이 화면 위를 슬라이드했다. 통장 잔액은 12만 원이었다. 상자는 침대 옆에 놓여있었다.베리타는 그것을 바라봤다. 베이지색 골판지로 만들어진 상자였다.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모서리는 닳아서 색이 변해있었다. 여러 번 옮겨졌던 흔적이 보였다. 평범한 종이상자였다. 아.. 「손 끝에 보이는 죽음」 에피소드 1-1: 침묵 속의 2년 강동진 신부는 항상 정확한 시간에 들어섰다. 오전 9시 30분. 미사가 끝나고 추운 공기에 하얀 입김을 뿜으며 신자들이 나간 지 20분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베리타. 잘 지냈나?" 강동진 신부가 옆에 섰다. 손에는 낡아서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보온병이 들려있었다. "네, 신부님." 베리타는 성당 벽감의 성모상 앞에 놓인 촛불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손을 멈추지 않았다. 촛불 세 개가 아직도 타고 있었다. 중년의 여성이 간절한 어깨로 계속 기도 중이었다.강동진 신부가 보온병을 베리타 옆에 내려놨다. "끼니 거르지 말아야지. 얼굴 많이 수척해졌어." 베리타가 돌아섰다. 신부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불안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 미안한 것처럼. "괜찮습니다." "시간이 좀 있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어.. 손 끝에 보이는 죽음 - 프롤로그 교황청 그레고리안 대학교(Pontifical Gregorian University) 건물 4층의 아울라 디 테올로지아(Aula di Teologia, 신학 강의실). 햇빛이 유난히 따뜻하던 날이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수백 년 된 벽돌을 황금색으로 물들였고, 공간에는 오래된 신학서와 석조 벽이 풍기는 진하고도 무거운 냄새가 가득했다. 이 방은 세기를 거쳐 수많은 영혼들의 회의(懷疑, doubt)와 질문을 들어온 곳이었다. "베리타, 신앙(信仰, faith)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루이지 추기경(Monsignor Luigi)은 창가에 선 채 그렇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항상 차분했다. 마치 깊은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처럼. 베리타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답할 필요가 없었다. 루이..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