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여진은 교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마치 오래된 사진 속 자신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의 이여진은 지금의 여진보다 작고, 더 마르고, 무엇보다도 불안해 보였다. 불안과 불확실함 속에 갇혀 있던 그때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참 어렸구나…'
여진은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교복의 주름을 펴고 가방을 집어 들었다.
부엌으로 나가자 어머니가 이미 식탁에 아침을 차려놓고 있었다. 달걀 프라이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국, 그리고 따뜻한 밥. 여진은 잠시 멈춰 서서 그 장면을 바라봤다. 너무나 익숙한, 하지만 동시에 잊고 지냈던 광경이었다.
"왜 그래, 여진아? 얼른 앉아."
어머니는 여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엄마."
여진은 어머니의 옆에 앉아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단순한 아침 식사조차도 그동안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몰랐다. 엄마의 손길이 담긴 아침 식사는 그때 당시에는 그저 일상적인 것이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오늘 뭐 시험 있니?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여."
어머니는 여진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여진은 잠시 생각했다. '시험?' 이 시기의 자신이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아니요, 그냥 조금 긴장돼서 그래요."
여진은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
"그래, 힘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어머니의 말은 마치 오래된 위로처럼 여진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서기 전, 여진은 문득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엄마, 저녁에 같이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그럼, 그게 무슨 말이니? 언제든지 얘기하자."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딸을 보냈다. 여진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차가운 아침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이 공기마저도 그녀에겐 너무나 생생했다.
학교로 가는 길, 여진은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변하지 않은 동네의 모습, 그녀가 매일 지나던 골목과 작은 가게들, 모두가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길을 다시 걷다니…' 여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학교에 도착하자, 그녀는 곧바로 교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들이 그녀를 맞이했다. 반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여진에게는 그 얼굴들이 너무 어렸다. 교복을 입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그들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 수업 시작 전 늘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을 자던 친구, 수민이 눈에 들어왔다. 여진은 조용히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여진, 안녕!"
수민이 눈을 비비며 머리를 들어 여진을 바라봤다.
"어제 우리 반 전원 모였을 때 너만 안 왔잖아. 대체 어딜 갔었어?"
여진은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녀는 이 날 친구들과의 모임 대신 아르바이트를 선택했었다. '그땐 아르바이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미안해, 일이 있어서 그랬어."
여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꼭 갈게."
수민은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다음에는 꼭 와. 재미있었거든!" 하고 말했다.
수업이 시작되자, 여진은 차분히 교과서를 펴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책 속의 내용은 분명히 고등학생이 배워야 할 것이었지만, 현재의 여진에게는 너무 쉬운 문제들 뿐이었다. 이미 한 번 배웠고, 어른의 시선으로 다시 보니 모든 것이 명확했다.
'이때의 나, 왜 이렇게 힘들어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날 하루는 순조로웠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의 대화도, 학교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웠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다.
'그때로 돌아왔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집에 돌아와 방에 들어간 여진은 침대에 누워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번 생은 달라질 수 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되었다. 이제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까?
문득, 고등학교 시절의 중요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대학을 선택했던 순간, 전공을 고민했던 시간들, 그리고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기회들. 그때는 별다른 생각 없이 선택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기 때문에, 더 신중해질 수 있었다.
"여진아, 저녁 먹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식탁에 앉은 여진은 조용히 저녁을 먹으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바라봤다. 두 사람의 모습이 어쩐지 조금 더 힘차고 젊어 보였다.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졌다.
"엄마, 아빠. 앞으로 제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 해요." 여진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부모님은 놀란 듯 그녀를 바라봤다. "진로라니, 갑자기 왜?" 어머니가 물었다.
"그냥, 지금까지 너무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은 걸 찾고 싶어요." 여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걸 찾는 건 중요하지. 하지만 뭔가 불안하거나 걱정이 되는 일 있니?"
여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제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요. 그동안 많은 걸 놓친 것 같아서…"
어머니는 여진의 손을 잡았다.
"그렇구나. 네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무엇을 하든 우리는 너를 응원할 거야."
여진은 부모님의 지지에 안심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 그녀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새로운 기회가 주어진 만큼, 이제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여진은 다시 결심을 다졌다. 이 기회,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